전체주의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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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체주의의 기원》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로, 반유대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를 분석한다. 이 책은 19세기 유럽의 정치 질서와 반유대주의의 발흥, 신제국주의의 전개,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의 이데올로기화를 다룬다.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전근대적 독재와 달리 내부로부터 인류를 지배하고 테러를 가하는 새로운 방식을 사용한다고 주장하며, 테러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개인을 통제하고, 대중 사회의 고립된 개인들이 전체주의 운동을 지지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전체주의의 작동 원리를 밝히고, 나치 독일과 소련을 예시로 들어 전체주의 체제의 특징을 설명하며,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비판적 성찰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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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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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전체주의의 기원 |
원제 | (미제공) |
저자 | 한나 아렌트 |
삽화가 | (미제공) |
표지 미술가 | (미제공) |
국가 | (미제공) |
언어 | 영어 |
시리즈 | (미제공) |
주제 | 나치즘, 스탈린주의, 전체주의 |
출판사 | 쇼켄 북스 |
출판일 | 1951년 |
영어 출판일 | (미제공) |
미디어 유형 | 인쇄 (하드커버 및 페이퍼백) |
쪽수 | 477쪽 |
ISBN | (미제공) |
OCLC | 1163364 |
선행 작품 | (미제공) |
후속 작품 | (미제공) |
2. 역사적 배경
한나 아렌트의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은 전체주의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깊이 있게 분석한 중요한 연구이다.[1] 이 책은 크게 세 부분, 즉 반유대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전체주의 자체에 대한 분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유럽 사회의 변화가 어떻게 전체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현상을 낳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책의 첫 부분에서는 19세기 중앙 유럽, 동유럽, 서유럽 등지에서 점차 확산된 반유대주의의 다양한 양상과 그 뿌리를 추적한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사회적 편견을 넘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이후 전체주의 등장의 한 배경이 되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1884년 무렵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까지 유럽 열강들이 경쟁적으로 펼쳤던 신제국주의 시대를 다룬다. 아렌트는 이 과정에서 경제적 팽창 욕구와 함께 인종차별주의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발전했음을 지적한다. 제국주의적 팽창과 통치 방식은 기존의 국민 국가 체제와 갈등을 일으키며 유럽 사회의 불안정성을 높였다.
마지막으로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전제 정치나 폭정, 독재와 같은 과거의 억압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전체주의는 이데올로기와 테러를 통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내면까지 통제하고 동원하려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지배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경험 위에서 어떻게 전체주의가 발현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2. 1. 19세기 유럽의 정치 지형
19세기 유럽의 정치 질서는 국민 국가와 계급 사회라는 두 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민 국가는 문화적 동일성을 바탕으로 한 통일된 집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부유층과 빈곤층 등 여러 계층으로 나뉜 계급 사회가 존재했으며, 이는 모든 국민이 문화적으로 동일하다는 국민 국가의 이상과는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것이었다.당시 유럽 사회에서 유대인은 이러한 계급 사회 구조로부터는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국민 국가의 틀 안에서는 법적으로 평등한 구성원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는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 1792년 프랑스 칙령 등으로 법적 해방이 이루어진 이후, 유대인들은 국가 운영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기존의 계급 사회 질서에는 완전히 편입되지 못했다. 이들은 국민 국가의 보호를 받는 평등한 시민으로 간주되었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분리된 독특한 집단으로 남았다.
이러한 유대인의 특수한 지위는 국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될 때 그 분노가 유대인에게 향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반유대주의가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 단계였다고 분석하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드레퓌스 사건을 제시한다.
2. 2. 제국주의의 등장과 팽창
한나 아렌트는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제국주의를 반유대주의, 전체주의와 함께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이 책은 1884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1914년)까지 이어진 신제국주의 시대를 고찰하며, 인종차별주의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부상하는 과정을 추적한다.아렌트는 근대 제국주의의 뿌리가 19세기 유럽 국가들의 과도한 자본 축적에 있다고 보았다. 이 잉여 자본은 더 높은 수익성을 위해 유럽 외부, 즉 해외로의 투자를 필요로 했으며, 이러한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정치적 통제력의 해외 확장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관료제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났다. 즉,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자본 수출을 추진하는 동시에, 행정력을 통해 권력의 수출도 함께 추진했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팽창 과정에서 인종주의, 특히 과학적 인종주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인종주의는 식민지 피지배 민족과의 외형적 차이를 부각함으로써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또한, 관료제는 식민 통치에 적합한 행정 명령 체계를 구축하고 효율적인 통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제국주의의 특징인 끊임없는 팽창 정책을 뒷받침했다.
아렌트는 제국주의의 무제한적인 영토 및 경제적 확장 욕구가 기존의 영토적으로 제한된 국민 국가 체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존 계급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 이른바 모브(mob)가 이민을 통해 식민지 개척에 나서면서 제국주의 팽창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일찍이 해외 식민지를 확보하는 '해외 제국주의'를 추진할 수 있었지만, 후발 주자였던 독일과 러시아는 유럽 대륙 내부로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대륙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대륙 제국주의는 해외로의 팽창이 제한된 상황에서 범게르만주의나 범슬라브주의와 같은 범민족 운동과 결합하며 점차 인종주의(특히 종족적 민족주의)적 성격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 체제에 적대적이고 반의회주의적인 성향을 띤 '운동'들이 기존의 정당 정치를 대체하며 등장하기도 했다.
2. 3. 전체주의의 대두
한나 아렌트는 외로움이 전체주의화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나 운동에 더 쉽게 빠져든다고 주장했다.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국민 국가와 그에 기반한 계급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소수 민족 문제와 인권 문제가 부각되었고, 대중 사회가 형성되었다. 과거 계급 사회에서는 각 계급의 이해관계를 정당이 대변했지만, 계급 사회가 해체되면서 정당으로부터도 소외된 고립된 대중이 사회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기존의 계급 정당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 세력을 통해 표출하고자 했으며, 이 과정에서 선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전체주의 운동의 지지 기반이 되었다.
소련의 경우, 스탈린은 집단 농업화 정책과 유산 계급의 청산을 통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원자화시키고 고립시켜 인위적으로 대중 사회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형성된 대중 사회에서 전체주의는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테러와 이데올로기를 핵심 수단으로 사용했다. 테러는 법의 지배가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 영역을 파괴했으며, 이데올로기는 사회 구성원들을 특정한 사회 운동의 틀 안에 강제로 편입시킴으로써 전체주의 체제를 공고히 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 체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개인의 고유한 특성, 즉 개인성을 완전히 파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다고 지적했다.
아렌트에 따르면, 스탈린 체제의 범죄는 단순히 수백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유명 정치인이나 문학가를 살해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핵심은, 소위 "반혁명적" 활동과는 전혀 무관했던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데 있다. 심지어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조차 이러한 체제의 본질적인 범죄성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시도에 불과했다고 비판한다.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의 테러는 모든 조직적인 반대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고, 지배자가 더 이상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고 판단될 때 오히려 더욱 잔혹하게 자행되는 특징을 보인다.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실업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별다른 선전 없이 실업 수당 자체를 완전히 폐지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소련에는 실업이 없다"는 거짓말을 현실로 둔갑시켰다. 이처럼 소련의 전체주의적 독재는 이데올로기적 교리나 그로부터 파생된 거짓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테러를 동원했다. 또한 스탈린은 러시아 혁명의 역사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다시 쓰기 위해 관련 자료는 물론, 기존 역사책의 저자와 독자까지도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1938년에 새로운 러시아 공산당 역사가 출판되었을 때, 이 사건 자체가 러시아 지식인 사회의 10분의 1이 희생된 대숙청의 종결을 의미하기도 했다.
아렌트는 볼셰비즘 운동이 나치 운동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고 보았다. 나치가 '유대 자본에 의한 세계 정복 음모'라는 허구를 만들어내 선동에 활용했듯이, 볼셰비키 역시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확장을 위해 음모론이라는 허구가 필요했다. 볼셰비키가 완전한 전체주의 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용한 대표적인 허구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세계적인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후에도 "300가족"의 음모, 제국주의의 음모, 코스모폴리턴의 음모, 자본가의 음모 등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음모론을 만들어 활용했다. 1930년대 이후 소련은 이러한 음모론 없이는 국내 정치와 외교 정책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소련의 공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심각한 비효율과 실패는 역설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원자화(개개인으로 파편화되는 현상)를 심화시켰고, 이는 오히려 볼셰비즘 운동의 힘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찬가지로, 동유럽에서 나치가 자행한 대량 학살은 경제적으로는 노동력 손실을 의미했지만, 인종적으로 순수한 사회를 만든다는 나치의 목표 달성에는 기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아렌트는 나치나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성공과 실패를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허구적인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실패를 실패로 기록하고 인정하는 행정 시스템조차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렌트는 냉전 시대 서방 세계의 공식 이데올로기였던 "반공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3. 전체주의의 작동 원리
한나 아렌트는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의 마지막 3부 '전체주의'에서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제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전체주의 운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기존의 사회 계층 구조가 무너지고 개인이 원자화된 '대중' 사회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대중은 전통적인 정치 체제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쉬우며, 전체주의 운동은 이들을 동원하기 위해 선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선전은 전체주의 운동이 아직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을 때, 비전체주의 세계를 상대로 지지 기반을 넓히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아렌트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전체주의 지배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들은 현실 세계와의 유대감을 상실하고 의미를 찾기 어려워하며, 이는 전체주의가 제시하는 단순하고 강력한 이데올로기와 허구적 세계관에 쉽게 빠져들게 만드는 심리적 기반이 된다. 즉, 개인의 고립과 외로움은 전체주의 운동이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는 핵심적인 작동 원리 중 하나이다.
3. 1. 테러와 이데올로기
전체주의는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고 체제로서 기능하기 위해 테러와 이데올로기를 핵심 요소로 삼는다. 테러는 법의 지배가 보장하는 자유의 영역을 파괴하며, 이데올로기는 사회 구성원을 특정한 운동의 틀 안에 강제로 묶어둠으로써 전체주의를 제도화한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전제 정치, 폭정, 독재와 같은 기존의 정치적 억압 형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전체주의는 단순히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공포를 이용하여 일반 대중까지 복종시키고 인간을 내면에서부터 지배하려 한다. 전체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성을 완전히 멸절시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있다.전체주의 체제 하에서의 테러는 모든 조직적인 반대 세력이 사라지고 지배자가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판단될 때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테러가 단순히 반대파 제거 수단이 아니라, 체제 유지와 대중 통제를 위한 상시적인 도구임을 보여준다.
소련의 스탈린 체제는 이러한 전체주의적 테러와 이데올로기 조작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스탈린 체제의 범죄성은 소수의 유명 정치인이나 문학가 살해에 국한되지 않고, 반혁명 혐의조차 씌울 수 없는 수백만 명의 무고한 민중을 학살한 데서 그 심각성이 드러난다. 이후 니키타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은 오히려 이러한 체제 범죄의 규모를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시도였다는 비판도 있다.
소련의 전체주의 독재는 이데올로기적 교리와 그로부터 파생된 거짓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테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국가에 실업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를 관철하기 위해 선전 대신 실업 수당 자체를 폐지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소련에는 실업이 없다"는 거짓 명제를 현실처럼 만들었다. 또한 스탈린은 러시아 혁명의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다시 쓰기 위해, 기존 역사 기록뿐만 아니라 관련 저자와 독자들까지 대숙청을 통해 제거했다. 1938년 새로운 러시아 공산당사 간행은 이러한 역사 왜곡과 지식인 학살의 정점이었다.
볼셰비즘 운동은 나치즘과 매우 유사하게 음모론이라는 허구를 적극 활용했다. 나치가 유대인 자본에 의한 세계 음모론을 내세웠듯, 볼셰비키는 트로츠키주의의 세계 음모설을 시작으로 "300가족 음모론", 제국주의 음모론, 코스모폴리턴 음모론 등 필요에 따라 다양한 허구를 만들어내고 이를 내정과 외교의 기반으로 삼았다. 1930년대 이후 소련은 이러한 음모론 없이는 내정과 외교를 운영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객관적인 성공이나 실패의 기준 자체가 무의미해지며, 실패를 기록하고 인정하는 행정 시스템조차 존재하기 어렵다.
전체주의 운동의 핵심에는 이념에 대한 찬반 여부에 따라 적과 동지를 규정하는 방식이 있다. 이 규정은 개인의 실제 생각이나 행동과는 무관하게 오직 이념에 따라 '객관적으로' 결정된다. 나치의 인종적 열등자(유대인)나 소련의 소멸 대상 계급(부르주아)은 바로 이러한 '객관적인 적'에 해당한다. 누가 체포되고 숙청될지는 체제의 정책에 따라 미리 정해져 있으며, 개인의 주관적인 의사나 행위는 고려되지 않는다. 이 '객관적인 적'의 죄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되며, 주관적인 요소는 참작되지 않는다. 스탈린은 자신이 가장 신뢰했던 동지들을 숙청함으로써 인간적인 우정이나 적대감 같은 감정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강제 수용소에 보내진 '객관적인 적'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임의로 선정되었다. 이는 과거 어떤 폭정보다도 효과적이고 철저하게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는 방식이었다. 나치와 소련의 전체주의 지배는 전통적인 죄의 개념을 폐기하고, 대신 '바람직하지 않은 자', '살 가치가 없는 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이들을 사회에서 완전히 말살했다. 이는 마치 그들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역사를 지우는 행위였다.
3. 2. 전체주의 체제의 특징
한나 아렌트는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나치 독일과 소련의 전체주의 체제를 분석하며, 이것이 전제 정치, 폭정, 독재와 같은 기존의 정치적 억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형태의 정부"라고 주장했다. 전체주의는 단순히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공포를 이용하여 일반 대중까지 굴복시키려 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특유의 이데올로기와 강압 장치를 통해 "인간을 내부로부터 지배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수단"을 발견했다고 지적했다.전체주의 체제는 독재 정권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독재 정권이 절대적인 정치 권력을 확보하고 반대 세력을 불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전체주의 정권은 세계 지배를 목표로 삼아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삶 모든 영역을 통제하려 시도한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는 지적, 정신적, 예술적 활동조차 정치적 반대만큼이나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권력을 장악한 전체주의는 기존의 유능한 인재들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체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이들로 채우는 경향을 보인다.
전체주의 운동은 계급 사회가 해체되고 정당 정치로부터 소외된 고립된 대중 속에서 성장한다. 소련의 경우, 스탈린은 집단 농업화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개인들을 원자화시키고 고립시켜 대중 사회를 형성했다고 분석된다. 이렇게 형성된 대중은 기존 정치 세력 대신 선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전체주의 운동을 지지하게 된다. 전체주의는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고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테러와 이데올로기를 핵심 수단으로 사용한다. 테러는 법의 지배가 보장하는 자유의 영역을 파괴하고, 이데올로기는 사회 전체를 특정한 운동의 방향으로 강제하며 전체주의를 제도화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 체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개인성을 완전히 멸절시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전체주의는 자신의 본질적인 목표를 외부 세계로부터 숨기기 위해 전위 조직, 위장 정부 기관, 난해한 교리 등을 활용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들은 외로움 속에서 전체주의 이념과 운동에 더 쉽게 빠져들게 되는데, 아렌트는 이러한 고독이 전체주의 지배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보았다.[3]
나치 독일과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전체주의 체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스탈린 체제의 범죄성은 단순히 소수의 정치인이나 지식인을 살해한 데 그치지 않고, 아무런 혐의도 없는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반혁명적이라는 명목으로 제거한 데 있었다. 이러한 테러는 모든 조직적인 반대 세력이 사라지고 지배자가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판단될 때 오히려 더욱 극심해지는 특징을 보인다.
전체주의 체제는 이데올로기적 허구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테러를 동원한다. 예를 들어,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국가에 실업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실업 수당 자체를 폐지함으로써 "소련에는 실업이 없다"는 거짓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스탈린은 러시아 혁명의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다시 쓰기 위해 기존 역사책뿐만 아니라 그 저자와 독자까지 제거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1938년 새로운 러시아 공산당사가 간행되었을 때, 이 출판 자체가 러시아 한 세대 지식인의 10분의 1을 몰살한 대숙청의 종료이기도 했다.
볼셰비즘 운동은 나치 운동과 매우 유사하다. 나치가 유대 자본에 의한 세계 음모라는 허구에서 출발했듯이, 볼셰비키도 세계 음모라는 허구를 필요로 했다. 볼셰비키가 완전한 전체주의 운동이 되기 위해 사용한 허구는 트로츠키주의의 세계 음모설이었으며, 그 이후에도 "300가족"의 세계 음모, 제국주의, 코스모폴리턴, 자본가의 음모 등 그 때마다 필요에 따라 바꿔갔다. 1930년대 이후, 소련은 내정 외교 모두 이러한 음모론이라는 허구 없이는 해낼 수 없게 되었다.
소련의 공업 건설기에서의 그로테스크한 실패는, 노동자 계급의 원자화를 초래함과 동시에, 볼셰비즘 운동의 힘을 증대시켰다. 마찬가지로, 동유럽에서의 나치의 대량 학살은 노동력의 손실이 되었지만, 인종 사회의 안정을 가져왔다. 나치나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성공과 실패를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며, 허구의 세계에서는 실패를 실패로 기록하는 행정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4. 전체주의와 현대 사회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유대인 출신 정치학자이다.[1] 1933년 나치당 집권 후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1941년 프랑스 침공 후 미국으로 다시 망명하여 학문 활동을 이어갔다.[1] 그의 대표 저작인 《전체주의의 기원》(1951)은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나타난 전체주의 현상을 분석한 연구이다.[1] 이 책은 제1부 '반유대주의', 제2부 '제국주의', 제3부 '전체주의'로 구성되어, 전체주의의 역사적, 사상적 뿌리를 심층적으로 탐구한다.[1]
4. 1. 중화인민공화국의 사례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독재 초기 단계에서 상당한 유혈 사태가 발생하여, 약 1,5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는 비율로 보면 스탈린 시대 러시아의 인구 감소보다는 적은 수치이다. 마오쩌둥은 1957년 "인민 내부의 모순을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에 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소위 백화제방 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자유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 독재 하에서도 모순이 존재함을 인정하되 반대자는 "사상 교정"을 통해 다스리겠다는 의도였다.중국 공산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변하지 않아야 하며, 정치적으로는 세계 지배를 목표로 하는 국제적인 운동을 지향했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특성은 초기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나 아렌트는 중국 공산당의 국제 정책에 대해, 모든 나라의 혁명 운동에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인물들을 침투시켜 베이징의 지도 하에 코민테른을 부활시키려 한 매우 강압적인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5.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한나 아렌트의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은 출간 이후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폭넓은 관심과 함께 다양한 평가를 받아왔다. 1999년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이 책을 '20세기 100권의 책' 중 하나로 선정했으며, 미국의 보수 성향 잡지 내셔널 리뷰는 '20세기 100대 논픽션 도서' 목록에서 15위로 평가했다.[4][16] 또한 대학연구소(Intercollegiate Studies Institute)는 '20세기 50대 논픽션 도서'에 이 책을 포함시켰다.[5][17] 작가 노먼 포도레츠는 이 책이 나치즘과 공산주의 모두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려 한 전체주의 체제이며 본질적으로 "절대악"임을 증명했다고 평가하며 큰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6][18]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비판, 특히 생산력 해방 가능성에 대한 과대평가가 전체주의적 관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지지하며 이를 자신의 이론에서 확장하기도 했다.[13][25][26] 유대주의 사상가 게르숌 숄렘은 아렌트의 다른 저작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9][21] 숄렘은 에른스트 블로흐를 인용하며, 유대인 박해 시기에는 반유대주의 자료만이 유일하게 남은 기록일 수 있음을 언급하며 아렌트의 자료 사용을 간접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10] [11][22][23]
반면, 이 책은 여러 측면에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2009년 시카고 대학교 교수 버나드 와서스타인은 아렌트가 반유대주의적 자료들을 비판 없이 수용했으며, 정치 경제, 외교, 군사 전략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7][8][19][20] 역사학자 에마뉘엘 사아다는 아렌트가 과학적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비판했다. 사아다는 아렌트가 언급한 고비노와 같은 인종 사상이 실제 유럽 식민주의 정당화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며, 아렌트가 강조한 과학적 인종주의보다는 '관료적 인종주의'가 전체주의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12][24] 역사학자 존 루카스는 이 책을 "결함 있고 부정직한 책", "비역사적이고 옹알거리는 장황함"이라고 혹평하며, 특히 소련에 대한 분석이 피상적이라고 비판했다.[14][15]
일본의 정치학자 가와사키 오사무는 이 책이 출간 당시 자료의 한계와 실증성 부족으로 인해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에 대한 역사서로서의 역할은 다소 퇴색했지만, 현대 사회의 정치 현상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정치 이론서로서의 가치는 유효하다고 평가했다.[27][28]
참조
[1]
문서
Originally published in the United Kingdom as ''The Burden of Our Time''
[2]
서적
Internal colonization: Russia's imperial experience
https://books.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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